500억 달러와 700억 달러는 서로 다른 계산법, 서로 다른 시점의 숫자다.
오픈AI가 매출을 부풀렸다가 고친 게 아니라, 투자자들이 경쟁사 방식으로 다시 계산한 숫자가 먼저 퍼졌다.
국내 기사 상당수는 이 차이를 빼고 “실망”과 “거품론”으로 제목을 달았다.
지난주 목요일, 미국 반도체주가 크게 빠졌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 -3.4%, 엔비디아 -2.9%, 마이크론 -4.8%.
이유로 꼽힌 건 오픈AI의 매출 숫자 하나였다.
500억 달러. 시장이 알고 있던 700억 달러보다 200억 달러 적다.
그런데 다음 날 다시 700억 달러가 나왔다. 이번엔 연말 전망이었다.
500억? 700억! 이틀 사이에 숫자가 오락가락했다. 국내 기사 제목만 보면 오픈AI가 매출을 부풀렸다가 들킨 것 같은 느낌이다.
정말 그런 걸까?
무슨 일이 있었나
| 날짜 (미국) | 보도 | 숫자 | 무엇을 센 숫자인가 |
|---|---|---|---|
| 9월 29일 | Axios 등 | 약 700억 달러 | 9월 기준. 투자자들이 앤트로픽 방식으로 환산한 추정치 |
| 10월 8일 | FT | 500억 달러에 근접 | 9월 말 기준. 오픈AI가 투자자에게 준 자료, 오픈AI 방식 |
| 10월 9일 | 블룸버그 | 700억 달러 이상 | 연말 전망. 오픈AI 방식 |
700억 달러가 두 번 나온다. 그런데 둘은 같은 숫자가 아니다.
첫 번째 700억은 9월의 숫자를 다른 계산법으로 부풀린 추정치다. 두 번째 700억은 오픈AI 계산법으로 연말에 도달하겠다는 전망이다.
그리고 오픈AI는 어느 쪽에도 공식 논평을 하지 않았다. 제목의 “발언”이라는 말도 사실 정확하지는 않다. 모두 투자자 자료를 본 소식통의 숫자다.
200억 달러는 어디서 생겼나
핵심은 “연 환산 매출”을 세는 방법이다.
연 환산 매출은 최근 한 달 매출에 12를 곱하는 식으로, 짧은 기간 매출을 1년 치로 늘린 숫자다. 실제로 1년 동안 번 돈이 아니다.
여기에 회사마다 세는 범위가 다르다.
- 앤트로픽: AWS, 구글 클라우드 같은 파트너를 통해 팔린 금액 전체를 매출로 잡는다. (총액)
- 오픈AI: 클라우드 파트너를 통한 판매는 자기 몫만 매출로 잡는다. (순액)
투자자들은 두 회사를 나란히 비교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픈AI 숫자를 앤트로픽 방식으로 다시 계산했고, 그게 700억 달러였다.
오픈AI 방식 그대로면 500억 달러다.
7월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400억 달러로 알려졌지만 투자자 자료로는 300억 달러에 가까웠다.
정리하면 이렇다.
같은 9월 말 오픈AI 매출 = 500억 달러 (오픈AI 방식) = 약 700억 달러 (앤트로픽 방식으로 환산)
회사가 버는 돈은 그대로다. 자를 바꿨을 뿐이다.
같은 숫자, 다른 제목
국내와 미국 기사 제목을 나란히 놓아봤다.
— 국내 보도
- 머니투데이 (12일): “오픈AI, 매출 부풀렸나… 다시 부풀어오른 거품론”
- SBS Biz (12일): “예상보다 27조원 밑돈 오픈AI 매출… 시장 실망”
- 톱스타뉴스 (9일): “오픈AI 매출 200억달러 논란에 반도체 급락… 연말 700억달러 반전”
+++ 미국 보도
- FT (8일): 500억 달러 근접. 격차는 투자자들이 앤트로픽 방식으로 환산하면서 생겼다고 바로 설명
- 블룸버그 (8일): “Less Than Reported”. 알려진 것보다 적다는 제목이지만 본문에서 계산법 차이를 짚음
- 블룸버그 (9일): “OpenAI Expects $70 Billion in Annualized Revenue by End of 2026”. 연말 전망으로 이어 씀
미국 기사도 “알려진 것보다 적다”고 썼다. 다만 같은 기사 안에서 이유를 설명했고, 다음 날엔 전망으로 이어 썼다.
“부풀렸나”는 오픈AI가 숫자를 키운 것처럼 읽힌다. 하지만 700억 달러를 만든 건 오픈AI가 아니라 비교하려던 투자자들이었다.
“27조원 밑돈”은 예상치와 실제치가 같은 자로 잰 숫자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데 둘은 다른 자로 잰 숫자다.
공정하게 말하면 국내에서도 한국경제, 서울파이낸스처럼 본문에서 계산법 차이와 “실제 연간 매출이 아니다”를 짚은 기사가 있었다. 문제는 제목이다. 대부분 사람은 제목만 본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시장은
| 날짜 (미국) | 나스닥 | 필라델피아 반도체 | 엔비디아 | 오라클 |
|---|---|---|---|---|
| 10월 8일 (FT 보도) | -1.4% (나스닥100) | -3.4% | -2.9% | -5.5% |
| 10월 9일 (블룸버그 보도) | +0.64% | -0.41% | -0.52% | +4.6% |
8일엔 같이 빠졌다. 9일엔 소프트웨어주는 돌아왔고, 반도체는 소폭 더 밀렸다.
시장도 반쯤은 계산법 문제라고 받아들인 것 같다. 다만 반도체가 못 돌아온 건 숫자 자체보다 다른 걱정 때문일지도 모른다.
FT는 오픈AI가 2030년까지 약 2,800억 달러의 현금을 쓸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매출이 500억이든 700억이든, 쓰는 돈이 훨씬 크다는 사실은 그대로다.
“AI 투자가 얼마나 오래 이어질 수 있나”라는 질문은 계산법과 상관없이 남아 있다.
무엇이 다른가
국내 제목은 “부풀렸다, 실망했다”였다.
미국 본문은 “계산법 달랐다, 그래도 연말엔 700억”이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같은 사건을 국내는 신뢰의 문제로, 미국은 계산법의 문제로 읽었다.
내가 보기엔 진짜 문제는 그 사이에 있다.
비상장 회사의 연 환산 매출은 회사마다 정의가 다르고, 공시 의무도 없다. 그런데 이 숫자 하나로 엔비디아와 마이크론이 하루에 3~5%씩 움직인다.
숫자를 볼 때 “무엇을, 어떤 자로 쟀는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추가 확인 사항
- 오픈AI가 연말에 실제로 700억 달러(오픈AI 방식)를 넘는지. 9월 말 대비 약 40% 성장이 필요하다.
- 앤트로픽 상장(11월 전망) 때 공개되는 매출이 총액 기준인지, 순액으로는 얼마인지.
- 오픈AI 신규 투자 유치(300억 달러 이상, 기업가치 약 1.4조 달러)가 이번 논란에도 그대로 진행되는지.
- 오늘(12일) 휴장 후 처음 열리는 국내 증시에서 반도체주가 이 이슈를 어떻게 반영하는지.
500억과 700억 사이의 200억은 사라진 돈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계좌의 삼성전자는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오픈AI가 부풀렸다 보다도, 지속적으로 의심을 받을 만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심상치 않다. 이럴때일수록 비관론자의 관점으로 시장을 보고 대응해야겠다.
장기 물량은 보유, 단기 물량은 빠르게 대응하는 전략을 세워보자.